한정승인, 상속포기를 준비하면서 장례비는 부의금에서 사용된 것으로 해야 할지 아니면 상속재산에서 나간걸로 해야 할지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민법 조문과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장례비는 상속비용이며, 상속비용은 상속재산으로 충당합니다
• 민법 제998조의2에는 “상속비용은 상속재산 중에서 지급한다.”고 정해져 있습니다.
민법 제998조의2(상속비용) 상속에 관한 비용은 상속재산 중에서 지급한다.
• 그리고 장례식비, 묘지구입비 등 장례비용은 상속비용에 포함됩니다. 다만 합리적 범위를 벗어나 과도하게 지출된 장례비는 상속비용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얼마까지가 합리적인 장례비인지’ 답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실제 장례비보다 적은 금액만 장례비용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속에 관한 비용은 상속재산 중에서 지급하는 것이고, 상속에 관한 비용이라 함은 상속재산의 관리 및 청산에 필요한 비용을 의미하는바, 장례비용도 피상속인이나 상속인의 사회적 지위와 그 지역의 풍속 등에 비추어 합리적인 금액 범위 내라면 이를 상속비용으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다30968 판결 )
명시적인 대법원 판례는 없지만 천도재, 49재, 위패비용, 제사비용 등 종교적 행사에 들어간 돈은 상속비용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부산지방법원 2015. 10. 16. 선고 2014가단19543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6. 5. 26.자 2015브360, 361 결정, 대법원 2016. 8. 30.자 2016스549 결정(재항고 기각)]
하급심 판례를 인용하면서 49재 비용 등도 장례비에 포함된다고 잘못 설명하기도 하는데, 상속인 사이의 장례비용 분담문제에 관한 판례들입니다. 고인이 종교가 있었고 이를 존중하기 위해 49재를 했다면 상속인들이 그 비용을 분담해야겠지만, 상속채권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서는 얘기가 달라지는게 당연합니다.
• 참고로 상속세를 납부할때 장례비는 지출증빙이 없어도 최소 500만 원, 지출증빙이 있으면 최대 1000만 원까지 공제되고 봉안시설 또는 자연장지의 사용에 소요된 금액은 500만 원까지 추가로 공제됩니다.(상속세및증여세법 시행령 제9조 제2항) 이는 세법상의 기준일 뿐이며 민사사건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2. 장례비 영수증의 중요성
장례비 한도와 별개로 실제 지출된 장례비를 입증할 수 있는 영수증을 반드시 잘 보관해야 합니다.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 심판문을 받았다고 모든 절차가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단순 승인 문제: 상속인은 상속 개시를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데(민법 제1019조), 그 전에 상속재산을 처분하는 행위를 하면 단순 승인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 때 상속재산을 장례비용으로 지출한 것이라면 단순승인이 되지 않지만 이 사실을 증명할 영수증이 없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 한정승인 시 장례비 공제: 한정승인을 하면 상속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 상속 채권자들에게 변제하는 청산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이때 장례비 등 상속비용을 뺀 금액만큼 변제하게 되므로(위의 대법원 판례처럼 ‘상속재산의 관리 및 청산에 필요한 비용’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증명할 장례비 영수증을 철저히 챙겨두어야 합니다.
3. 장례비는 부의금과 상속재산 중 어디서 먼저 지출해야 하는가?
현실적인 결론만 말씀드리면 장례비용은 부의금으로 먼저 지출하고 모자라는 만큼 상속재산에서 충당하는게 무난합니다.
•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됩니다.(민법 제3조) 그리고 피상속인이 돌아가실 당시 가지고 있던 재산이 상속재산이 됩니다.(민법 제1005조) 그러므로 조문객들이 유족들에게 준 부의금은 상속재산이 될 수가 없으며 상속인의 고유재산입니다. 즉, 부의금은 돌아가신 분에게서 물려받은게 아니라 처음부터 상속인들의 돈입니다.
• 그리고 민법 제998조의2에는 “상속비용은 상속재산 중에서 지급한다.”고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장례비용은 상속재산의 관리 및 청산에 필요한 비용으로서 상속재산에서 지급하면 되고, 상속재산이 아닌 부의금을 먼저 사용할 의무가 있다는 법률규정은 없습니다.
한편 장례비용에 충당하고 남은 부의금은 상속인들이 상속분에 따라 나눠 가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 부조금 또는 조위금 등의 명목으로 보내는 부의금은 상호부조의 정신에서 유족의 정신적 고통을 위로하고 장례에 따르는 유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줌과 아울러 유족의 생활안정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증여되는 것으로서, 장례비용에 충당하고 남는 것에 관하여는 특별한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사망한 사람의 공동상속인들이 각자의 상속분에 응하여 권리를 취득하는 것으로 봄이 우리의 윤리감정이나 경험칙에 합치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66.9.20.선고 65다2319 판결, 대법원 1992. 8. 18. 선고 92다2998 판결 )
조문객 중에는 돌아가신 분의 지인이라서 유족을 지정하지 않고 부의금을 주는 경우도 있고, 인맥이 넓어서 부의금을 많이 받는 상속인도 있고, 덜 받는 상속인도 있으며, 상속인이 아닌 유족의 조문객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 조문객이 몇 명이 왔고 부의금은 얼마나 냈는지 하나하나 따져서 부의금을 나누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경우에는 “상속분에 응하여” 나누는게 우리의 윤리감정이나 경험칙에 합치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부의금이 상속재산이라면 당연히 상속분에 따라 나눠야만 하며 윤리감정까지 꺼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장례비용은 우선 부의금으로 충당하고 모자랄 때 상속재산으로 충당해야 한다’면서 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 사건은 공동상속인들이 장례비용에 충당하고 남은 부의금을 분배하다가 소송이 벌어진 경우이며, 대법원이 장례비용은 먼저 부의금으로 해결하라고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상속채권자와 상속인 사이의 소송에서나 이런 판단이 나올 수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에 나온 것처럼 유족의 생활안정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조문객들로부터) 증여되는 성격도 있습니다. 그런데 피상속인이 채무초과 상태일 경우에 유족들에게 생활안정을 포기하고 장례비용은 부의금으로 쓰고 상속재산은 온전히 빚 갚는데 쓰라고 강요하는 것이 ‘우리의 윤리감정이나 경험칙’에 합치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한편, 서울가정법원 2010. 11. 2.자 2008느합86,87 심판에는 ‘부의금이란 장례비에 먼저 충당될 것을 조건으로 한 금전의 증여’이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 사건도 공동상속인 사이의 장례비 분담에 관한 것이며, 조건이 해제조건부 증여라는 것인지 부담부 증여라는 것인지,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부의금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고 결국 대법원 판례의 “윤리감정이나 경험칙”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정승인 청산과 관련된 판결들은 장례비용은 상속에 관한 비용이어서 상속재산 중에서 지급할 수 있고 부의금으로 먼저 충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수원지방법원 2024. 11. 28. 선고 2024가단589553 판결 등)
반면 상속재산 파산사건에서는 장례비용은 부의금으로 먼저 충당해야 한다는 식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이와 같이 상속인 사이에서 부의금을 분배하는 문제와 제3자인 상속채권자들과 사이에서 청산 문제는 구별되어야 함에도, 부의금으로 장례비용을 먼저 충당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에 관한 명시적인 대법원 판례가 없는 상황에서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부의금을 먼저 장례비용에 쓰고 모자랄 때 상속재산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상속 관련 절차는 복잡하고 민감한 부분이 많으므로,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전문가와 상담하여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