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없이 소송을 하는 경우 가장 난감해 하는 것이 변론기일 출석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법정에서 무슨 열변을 토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재미를 위해 각색된 것일 뿐이고, 실제 재판은 다릅니다.
1. 준비서면 제출
드라마에 대본이 있는 것처럼 재판에는 소장이나 준비서면이 있습니다. 즉 법정이라는 세트장에 가기 전에 대본을 미리 내는 것이고, 판사(감독)님은 변론기일 전에 대본을 읽고 옵니다. 그리고 재판이 드라마 촬영보다 쉬운 점은 당사자(배우)가 법정에서 대본을 낭독할 필요 없이 ‘서면대로 진술한다’는 말만 하면 대본을 읽은걸로 친다는 점입니다.
변론기일에 출석해본 분들은 한결같이 간단히 끝난다며 놀라워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변론기일이 대충 진행되는게 아닙니다. 말로 하는 진술은 시간이 오래 걸리며, 판사라 해도 하루 수십 건의 재판을 하다 보면 망각하기 쉽고, 당사자도 깜빡 잊고 빠뜨리는 내용이 생길 수 밖에 없는 등 여러 모로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구술심리주의와 서면심리주의를 절충하여 합리적이고 공평한 방식으로 변론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변론기일을 제대로 진행하려면 잘 작성된 소장이나 준비서면(대본)이 필요합니다. 대본 없이 즉흥 연기를 시도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2. 변론기일 지정
원고가 소장을 제출하면 피고는 이를 송달받은 날로부터 30일 내에 답변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피고가 답변서를 제출하면 변론기일이 지정되고(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변론기일이 지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사이 양 당사자는 변론을 준비하기 위한 서면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3. 변론기일 진행 방식
• 법정 출석: 미리 통지받은 대로 시간을 맞춰 지정된 법정에 갑니다. 문 앞의 모니터에 사건번호와 당사자 이름이 나오므로 법정을 제대로 찾아간 건지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핸드폰은 반드시 꺼놓거나 무음으로 해두셔야 합니다.
• 호명: 순서가 되어 판사님이 사건번호와 당사자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고 원, 피고석으로 나갑니다.
• 서면 진술: 판사님이 ‘소장 또는 2025. 0월 0일자 준비서면 진술하실거냐’ 고 물으면 ‘네’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준비서면을 제출했더라도, 법정에 출석해서 말로 진술해야만 판결의 기초로 삼을 수 있는게 원칙이기 때문입니다.(민사소송규칙 제28조 제1항) 경우에 따라 판사님이 바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바로 대답을 할 수도 있고, 대답이 잘 떠오르지 않으면 ‘서면대로 진술하겠다’고 하면 됩니다. 추가적인 질문이라면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을 말하라. 그러면 나는 법을 주리라(Da mihi factum, dabo tibi tus)”라는 오래된 법언(法彦)과 같이 당사자는 사실을 주장하고 법적인 판단은 판사가 하는게 소송의 기본 컨셉입니다. 따라서 판사는 사실관계(예를 들어 돈을 빌린게 사실이냐, 언제 갚기로 했냐 등)를 물어볼 뿐이지 법조문이나 이론에 관한 어려운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 기일 종료: 변론이 끝날 때는 그 자리에서 바로 다음 변론기일을 잡거나 판결선고기일을 정해 알려줍니다.
4. 비변호사 소송대리
미성년자 등의 법정대리인은 당연히 소송에서도 본인을 대리할 수 있습니다. 임의로 소송대리인을 정하는 경우에는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다음과 같은 예외가 있습니다.
- 단독사건 중 소가 1억 원을 넘지 않는 경우 또는 자동차 운행 및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한 손해배상사건에서 친족 또는 직원 등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88조제2항 및 「민사소송규칙」 제15조제1항)
- 소액사건(소가 3천만 원 이하인 소송)에서 배우자·직계혈족 또는 형제자매는 법원의 허가를 받을 필요 없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습니다.(「소액사건심판법」 제8조제1항)
변론기일 출석은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가 없으며, 정 부담스럽다면 가족 등이 대신 소송대리인으로 출석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단 변론기일이 간단하게 진행되는건 당사자가 주장하는 권리의 법률요건사실이 기재된 서면이 제출된 경우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셀프소송을 하더라도 최소한 서면 작성은 법무사에게 맡기는 것이 현명합니다.